• 최종편집 2024-02-27(화)
 

기도하기

설교자나 청중은 자신을 위한 기도가 필요하다. 토요일 밤에 이런 기도의 시간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고, 아니면 설교와 관련된 구절들을 미리 공부하는 시간에 해도 좋을 것이다. 청중은 설교자가 설교 자료를 모으는 일주일 내내 그분을 위해 기도해야 할 것이다. 왜 설교를 위한 기도가 그렇게 중요한가?

 

 주일 아침, 저녁에 그 말씀이 선포되는 것은 하나의 강좌를 베푸는 것 이상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텔레비전의 드라마나 다큐멘터리와 비교될 수 없다. 설교는 아주 독특하다. 설교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사자를 통해서 그분의 말씀으로 자기 백성에게 말씀하시는 시간이다. 하나님께서 특이한 방법으로 거기 모인사람들 가운데 임하시며 역사하신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거기 모인 청중들이 그분의 임재로 인하여 말로 다할 수 없는 유익을 얻을 수 있도록 구하기를 원하신다.

 

 설교자와 회중을 위한 기도가 교회를 부흥하게 하는 설교와 따분한 설교를 구별 짓는다. 1859년 웨일즈에서 부흥 운동이 일어나고 있을 때, 한 설교자가 친구 목사를 방문하여 이렇게 말했다.

 

"존스턴(Johnston)목사, 요즘 목사들이 예전에 비해 설교를 훨씬 더 잘 하는 것 같네."

 그러자 존스턴이 대답했다.

"사람들이 예전보다 훨씬 더 설교를 잘 듣는게지"

 그러자 그 설교자가 이렇게 말을 이었다.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설교자들이 훨씬 더 설교를 잘해야 한다고 생각하네."

"왜 그리 생각하는가?"

"사람들이 모두 목사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거든."

 

 이 두 사람은 모두 옳은 말이다. 하나님께서 청중과 설교자의 기도를 응답하심으로, 설교자는 더 잘 설교할 수 있고 청중은 더 잘 들을 수 있게 된다. 오늘 교회에 이런 기도 운동이 일어나야 한다. 그럴 때에 설교자가 더 잘 설교하게 되고 청중이 더 잘 들으므로 교회를 엄청난 변화와 부흥을 가져오게 될 것이다.

 

규칙적으로 듣기

"안식일에 자기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가사"(4:16).교회에 정규적으로 참석하여 빠짐없이 설교를 들을 때에 영적으로 건강하게 되고 성장하게 된다. 청중들이 들쭉날쭉 교회에 출석하고 예배 때마다 교회도 설교자에 대해서도 어색하다면 은혜를 누리기가 쉽지 않다. 예배 드리기 전에 벌써 불안한 마음이 생기고 불편한 느낌을 갖게 된다. 익숙하지 않는 음식을 먹는 느낌으로 설교를 들게 될 것이다. 교회에 가면서 이미 걱정하기를 "사람들은 그 동안 어디 갔다 왔는지 물을까라고 물을지 모른다고 걱정한다.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되면 마음이 집중이 되지 않고 설교가 귀에 제대로 들려오지 않을 것이다.

 

 또 설교자가 강해설교나 주제별이나 교리들을 연속적으로 설교할 경우에, 나오다 말다 하게 되면 연속성이 깨져 잘 들을 수가 없게 된다. 그러므로 어쩔 수 없는 이유로 계속 연결되어지는 말씀을 듣지 못한다면 듣지 못한 말씀을 들을 수 있도록 교회에 도움을 청해야 한다.

 예배 참석이 들쭉날쭉 한 것은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이다.(10:25)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주님께 가까이 나아가려면 규칙적으로 말씀을 들어야 한다. 지금 우리의 모습이 그러하다면 회개하고 처음 행위를 다 찾아야 한다. 설교를 잘 들을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하는가에 관하여 기본적인 것을 기억하면서 이행하려고 힘쓰신다면 반드시 영적인 충만함과 특벽한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규칙적으로 말씀을 듣을 때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되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설교자의 설교가 들을 것이 없다고 말하기 전에 그렇게 말하는 당신은 무엇을 했는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우물에서 깨끗하고 시원한 물을 길어 올리기를 원한다면 깨끗하고 빈 물동이를 가지고 가야 한다.

 

 대장균이 우글거리는 액체가 담긴 물동이를 가지고 가서 거기에 우물 물을 하나 가득히 담았다면 오염된 물밖에는 얻지 못한다. 또한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견해, 혹은 그 설교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교회에 간다면, 설교자가 무슨 말을 하든지 흠을 찾아내게 될 것이다. 그런 사람은 설교를통하여 하나님이 주시고자 하는 은혜를 부어버린 것이다. 또한 그런 마음에 설교를 받아들인다 해도 오염된 것을 얻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설교를 듣는 청중의 마음가짐이 얼마나 중요한가?

 

설교자를 인정하라.

계시록에 보면 요한이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받아 쓰려고 펜을 들고 있을 때에 쓰지 말고 받아먹으라고 하셨다. 우리는 음식을 먹을 때에 씹어서 삼킬 때에 에너지가 된다. 우리가 말씀을 들을 때에 마음을 통째로 비우거나 머리에 편견이 조금도 남아 있지 않게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누구나 다 조금씩은 편견을 가지고 있다.

 

 말씀을 듣는 청중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적으로 받아들이는 자세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청중은 설교자를 있는 모습대로 수용하면서도 하나님의 사자(使者)로 대해야 한다. 바울이 표현한 것처럼 그는 "하나님의(그분으로부터 온) 사람"(딤후3:17)이었다. 바울은 "그의 사명" 때문에 자신을 존경해야 한다고 했다.(살전5:12-13 참조) 하나님의 사자로서의 그의 사명에 대하여 인정해야 하는 이유는 그가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일을 탁받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사자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사람이다. 그를 경멸하는 것은 그를 보내신 이를 경멸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다음과 같은 말씀을 기억하라. “너희 말을 듣는 자는 곧 내 말을 듣는 것이요 너희를 저버리는 자는 곧 나를 저버리는 것이요 나를 저버리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저버리는 것이라”(10:16).

 

사람들이 설교자에 대하여 이러쿵저러쿵 다른 말을 하더라도, 하나님의 심부름꾼을 거부하는 것은 하나님을 거부하는 소행인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러므로 청중의 의무는 하나님의 위임받은 심부름꾼을 통하여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메시지를 받아들이도록 자신을 준비하는 것이다. 청중은 하나님과 그분의 심부름꾼이 전하는 말씀에 대하여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메시지에 다가가야 한다. 그럼 그 심부름꾼이 형편없는 설교자일 때에는 어떻게 하는가? 이런 경우에는 귀를 돌려도 괜찮은가? 우리가 교회에 나오는 것은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서 교회에 나오는 것이고, 그 예배의 중요한 한 부분이 설교를 듣는 시간이다.

 

만일 당신에게 보낸 대통령의 특사의 말을 듣고 있다떤 그의 말에 있는 힘껏 귀를 기울일 것이다. 설사 그 특사가 매우 어눌하다 할지라도 그가 하려는 말에 귀를 세워 들을 것이다. 특사가 어떤 사람이든 대통령이 전하는 메시지를 가볍게 들지는 않을 것이다.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메시지를 들고 하나님이 사자가 아침에 찾아온 다면 어쩌겠는가? 그것을 전하는 사람이 누구든간에, 최고로 조심스럽게 듣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어떤 면에서 대통령과 의견을 달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에게 부정적인 편견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그의 직임 때문에 그를 존경할 것이고, 따라서 그가 보낸 특사에게도 그렇게 대할 것이다. 그분에게 불만이 있을지라도 진지한 마음으로 경청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그가 전하고 있는 메시지와 메시지를 보내신 분을 구별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심부름꾼에 대한 편견이 그가 전하는 말씀에 대한 편견으로 연결시키지 말라. 만일 당신이 설교자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말씀을 들을 때에는 그런 감정을 깨끗이 정리해야 한다. 우리는 그 설교자와 그의 가정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부름꾼 너머에 있는 메시지를 보며 나에게 그 메시지를 보내신 분을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 설교자의 말은 참된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설교자의 책임에 대해서 대해 말하고 있지 않겠다. 설교자는 거룩한 삶으로써 복음을 돋보이게 해야 하고,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설교에게서 무엇인가 꺼림칙한 것이 있으면 집중하여 설교를 들을 수 없다. 청중은 설교자가 심부름꾼이 아닌 그 너머에 숨어 있는 주님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자임을 시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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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칼럼] 설교 잘 듣기(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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